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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깨면 교육이 산다.   저:이관춘

수능시험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면 그렇듯이 올해도 전국의 고3과 학부모는 당일치기 ‘원샷 시험’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입시지옥’의 원조 격인 일본보다 훨씬 더하다는 입시 전쟁에 인생을 거는 것이다. 탈진한 수험생들이 채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 언론은 로또 번호 맞추듯이 답안을 공개할 테고, 입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마치 증시를 진단하듯 각 대학의 예상 합격점수를 쏟아 낼 것이다. 가슴 졸이며 답안을 확인하던 수험생·학부모는 한바탕 눈물과 한숨으로 뒤범벅이 될 테고, 심지어 그 중 몇 명은 성적을 비관해 열아홉 꽃다운 목숨을 내던질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11월 일그러진 한국 교육의 모습이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보아도,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교육지옥’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교육, 그 어두운 그림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예나 지금이나 학습자인 사람과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허나 2003년 한국의 교육은 행복은커녕 설움과 고통의 원천이 되고 있다. 없는 살림을 짜내 과외를 시키는 데 소요되는 비용, 소위 사교육비가 국내총생산 대비 2.7%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 입시지옥으로 소문난 일본보다도 사교육비가 2∼3배가 더 드는 나라다. 게다가 서민들의 가계를 옥죄는 사교육비는 마냥 치솟기만 한다. 통계청에 의하면 올 1/4분기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동기 대비 0.7%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학원 수강 등 사교육비는 무려 39.2%나 급증하였다. 50만 원 가까이 하는 유아교재가 홈쇼핑에서 40분 방송에 2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는 보도는 사교육비가 얼마나 서민 가계를 압박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면서도 괜찮은 대학에 진학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 그대로 범국민적 문제다.
이렇게 나라가 온통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로 휘청거릴 정도라면 그 결과물인 학생의 학력이나 교육의 국제경쟁력이라도 비례적으로 향상되어야 할 터인데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사교육의 산물인 대학 신입생들의 수학, 과학 등 기초 능력이 예전보다 오히려 떨어진다는 평가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또한 2002년 기준으로 교육분야별 국제경쟁력 순위(IMD 발표)도 중·고교 취학률이나 대학교육 이수율은 49개국 중 각각 1위와 6위인 데 반해 교육체제 경쟁력(32위), 대학교육 경쟁력(41위), 공교육 투자(42위) 등은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교육경제학적 측면에서 교육을 투자로 본다면, 학생과 학부모 및 국가적인 차원에서 모두 밑지는 장사만 하고 있는 셈이다.


비교육적 총점주의식 상대평가 신화
그렇다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인가.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교육문제의 핵심이 대학입학제도에 있다고 목청을 높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보아왔듯, 단순히 시험제도를 아무리 개혁해봤자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격으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결국 교육의 문제는 교육제도의 개혁과 아울러 개인과 사회 모두의 의식 변화가 수반될 때만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육원론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그 원론적인 문제 중 하나는 비교육적인 평가체제와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계급화된 대학신화이다. 우리 사회는 너나 할 것 없이 이들 교육신화에 싸여 있다.
교육신화란 교육에 관해 일반적으로 참이라고 믿고 있는 그릇된 또는 부정확한 신념을 말한다. 다시 말해, 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 참인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념이다. 이런 신념은 한 개인의 발전을 방해하고 희망을 좌절시킴은 물론, 삶 그 자체를 마비시킬 수가 있다. 수능시험을 포함해 학교에서 행해지는 총점주의식 상대평가에 관한 신화가 한 예다. 총점주의란 성격이 서로 다른 과목들의 점수를 하나로 합산해서, 그 점수의 높낮이로 서열을 매기고 학생 입학의 당락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도대체 수학 70점, 음악 90점, 국어 80점을 평균 내서 그 학생의 무슨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굳이 가드너Gardner의 중다지능 이론을 빌릴 필요도 없이 인간의 지능은 언어·수리·음악적·공간적·대인관계·개인 이해 및 운동적 지능 등 7가지 이상의 분리된 지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가수 서태지나 바이올린의 귀재 장영주는 수리·운동 능력이 형편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수리 능력을 중심으로 한 학교의 총점주의식 평가는 평가 자체의 문제는 물론, 다른 지능을 가진 학생들의 능력개발을 오히려 억압하는 비교육적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교사의 의도대로 따르고 이해하는 것이 중시되고 창의력과 상상력은 뒷전이고 묵살당하기 일쑤다. 마치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모습을 상상력 있게 그렸다가 “산수문제나 풀어!” “숙제나 해!” 하는 면박을 당하고, 그래서 여섯 살 나이에 화가의 꿈을 접고 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일류 디자이너가 될 소질을, 이벤트 전문가나 국제적 사업가로 튈 수 있는 능력을 일찌감치 무시당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능력은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만든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 퀴리, 뉴턴이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수학만 잘하는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못 가고 평범한 회사에 취직한다. 퀴리는 대학까지 마쳤으나 여성 이공계 인력을 받아주는 데가 없어 유학을 준비한다. 뉴턴은 박사과정을 밟던 중 열악한 환경에 좌절하고 의과대학에 편입한다.” 어느 신문에 난,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한국의 대학입시 평가제도는 언어에 약한 수학천재를 용인하지 못하고, 과학에 약한 미래의 대문호를 식별해낼 능력이 없다. 아마 이번 수능시험에서도 학원에서 하는 ‘사탐’(사회탐구) ‘과탐’(과학탐구) 쪽집게 강의를 듣지 못해 고배를 마신 한국의 셰익스피어, 미래의 아인슈타인들이 풀이 죽어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지 누가 알랴?
상대평가의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교육정신의학자인 글라써는 참다운 교육을 위해서는 수·우·미·양과 같은 등급을 철폐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상대평가제도는 모든 학생들이 다같이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항상 일등과 꼴찌가 명확하게 점수 차이에 따라 갈라지게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일등과 꼴찌가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교사에 의해 그리고 교육이란 미명하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 반 50명의 학생들 중 50%는 실제 실력과는 관계없이 평균 이하의 멍청이 학생들로 변질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학교는 억지로 그런 점수 차이를 빌미로 삼아 일등과 꼴찌를 사회에 생산해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같은 학급에서도 학생들은 협동보다는 경쟁을 해야 하는 갈등과 긴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반생명적이고 계급화된 대학신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비교육적인 학습평가체제를 바탕으로 구축된 한국의 대학문화다. 흔히들 입시지옥, 공교육 붕괴, 교육 이민의 원인으로 서열화된 한국의 대학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 서열 없는 대학이 어디 있는가. 학생이나 대학은 서로의 ‘다름’과 ‘뛰어남’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다름과 뛰어남이 상대 비교되어 우열로 구분되고 수직적 서열화로 발전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름과 뛰어남을 측정하는 수능 평가시스템이 전술한 바와 같이 비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신이 각자에게 부여한 고유한 능력과 소질을 무시하고 모두에게 ‘국·영·수’ 신화에 묻힌 학습평가를 하다 보니 대학마저도 소질이나 전공에 따른 서열이 아니라 ‘수능 점수 몇점짜리가 들어가는 대학’으로 서열화 현상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여러 선진국처럼 전공에 따라 대학의 우열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면 전공에 관계없이 무조건 최고라는 인식이 신화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서열화가 아니라 대학의 ‘계급화’다. 어느 재미 교수의 지적대로 ‘특수고에 들어가서 명문대에 입학하면(전공 불문하고) 평생 상위계급의 특권을 누리게 되는’ 계급화된 서열화가 총체적 교육 붕괴의 한가운데에 똬리를 틀고 있다. 평소에 성적이 괜찮은 아이가 하루에 해치우는 수능에서 낭패를 본다면, 그래서 수능 몇 점 차이로 이류 대학에 입학하면 훗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평생 이류인생의 딱지를 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학생들의 대학간, 전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워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나 한국은 다르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면 노력과 능력은 관계없다. 대학생활 내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아도 일류대 출신이고, 와신상담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이류대학 출신으로 자리매김되어 취업과 결혼으로 연결된다. 잘 나가는 결혼중매회사에서 등급을 매기는 첫 번째 조건이 출신 대학이다. 지방대학 졸업생들은 대기업에 지원서도 내지 못한다고 난리다. 상황이 이러니 일류대 입학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평준화된 공교육에 기대할 수 없는 학생들은 학원으로 개인 과외로 전략을 짠다.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대학입시의 ‘엄마점수’를 위해 치맛바람까지 가세한다. 자식과 함께 고3이 된 엄마는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틈새시장을 모색하며, 입시생의 특성에 맞춰 특기 점수를 올려놓아야 한다. 경시대회 일정 관리, 과외그룹 결성, 봉사기관 알선, 내신 관리에 맞춤형 학원 보내기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다. 계급화된 대학체제가 불러일으킨 참담한 교육파괴의 실상이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혹자들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이민을 간다고 하나 실상은 다르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들일 교육비는 한국보다 오히려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을 등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식에게 만큼은 평생 ‘이류’란 계급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대다수가 동의하는 교육을 지향하며
교육에도 신자유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21세기 경쟁사회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시스템을 갖추기란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대다수가 동의하는 교육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체제는 과연 교육적이냐, 합리적이냐 하는 물음에 답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비교육적인 의식과 관행의 신화를 깨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이제까지 당연시해 오던 평가방식부터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영·수 중심의 총점주의식 상대평가 신화에서 탈피하여 필수과목을 대폭 줄이고 선택과목의 폭을 확대하며 과목별 평가를 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처럼 수능에 적성과 소질에 맞는 4∼5과목만 선택할 수 있게 하되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성·독창성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학교의 수업방식과 내용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평가방법은 가르치는 방법과 직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시지옥의 주범인 학벌주의, 더 정확히 말해 대학의 계급화 풍토를 타파해야 한다. ‘수능 몇 점의 대학’식 서열화가 아니라 전공에 따른 일류대학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류, 이류 구분 없이 대학 입학 후의 학습 성취도에 따라 공정한 사회적 평가를 받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국의 우등honour 제도가 한 예다. 아울러, 입시지옥 현상을 획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2∼3년제 전문대학을 4년제로 전환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와는 달리 지식정보화 시대에서는 직업교육도 고등교육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한국은 대학교육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어 누구든지 원하면 학점은행제, 독학사제 등을 통해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문’자도 떼게 한 학생들에게 굳이 학사학위를 주는 데 인색한 것은 입시지옥을 부채질할 뿐 어떠한 명분도 없다.
교육의 모습을 일그러지게 만든 신화가 어디 몇 가지로 그칠 수 있겠냐마는 ‘인간화’에 반하는 교육의 의식과 관행 및 제도를 함께 개혁하는 노력만이 대다수가 동의하는 교육체제를 구축하는 지름길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현 정부도 이를 위한 노력으로 ‘학벌타파 기획단’을 출범시켜 학벌주의 극복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예가 아닐까 하는 비애감마저 들지만 ‘오죽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비교육적이며 반생명적인 사회관행과 시스템 전반을 개혁하여 하느님이 각자에게 부여한 ‘다름’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관춘 / 명지전문대 사회교육과 교수. 저서로 《직업은 직업이고 윤리는 윤리인가》《평생교육방법론》 《21세기를 여는 한국인의 가치관》 《한국 성인인력 개조론》 등이 있다.


발췌 : http://www.dsum.co.kr/0311thcontent/0311th-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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