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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포퍼 지음/이상헌 옮김,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생각의 나무, 2000)

 

'열린 사회'란 말은 얼마나 그리운 말인가? 이토록 닫혀 있는 인간과 인간의 공간에서 또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포퍼는 반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이데올로기는 위험한 것이며.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또한 무서운 것임을 역설한다. 지나친 역사주의에 대한 반성, 그리고 폭력에 길들여져 가는 문명에 대한 비판, 특히 텔레비젼의 해악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열렬한 자유주의의 대변자이면서 비판적 지성인의 표상으로 살았던 포퍼의 삶은 늘 자신에 대한 겸허한 자세와 반성적 사고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혁명은 내부적이며 지속적이며 점진적이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대화>는 이탈리아의 언론인 지안카를로 보세티가 포퍼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집에는 큰 서재가 있었으며 식당을 제외하고는 집 안 어디에든 책이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지적 분위기 속에서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고 포퍼는 나중에 술회하고 있다. 특히 철학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지그문트 포퍼의 서재에는 플라톤에서부터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칸트를 위시하여 밀, 니체, 엥겔스,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등의 저서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9)

 포퍼는 빈 대학에서 철학,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하여 <사고심리학의 방법론 문제>라는 논문으로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부 논문은 음악사에 관한 것이었다.(10~11)

 포퍼의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이외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경험이었다. 1914년, 그가 열두살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그는 한가운데에 있었다.(11)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그는 한때 공산주의에 매료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사회주의중등학생연맹'의 열성적인 회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으며, 학구적인 성향대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오류를 인식하게 되었다. 더욱이 나치스와 독재자 히틀러의 등장, 이에 대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시민의 반응은 그로 하여금 전체주의의 허상을 바로 알릴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쓰여진 저서가 그 유명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과 <역사주의의 빈곤>(1944/45)이다.(11~12)

 그는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자였다. 그는 파시즘을 증오하고 경멸했다.(13)

 그는 철학한다는 것은 비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합리적 비판이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철학을 기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합리적 비판이 없으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다.(14~15)

 더욱이 그의 정치 및 사회철학은 그의 과학 철학을 토대로 해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15)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진리이다.(15)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16)

 근대 철학은 인식의 원천으로서 신적인 것 내지는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배격하였으나, 그 대신 이성이나 경험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는다.(17)

 그에 따르면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타당성 문제이다.(18)

 포퍼는 절대적인 진리, 영원한 지식에 대한 추구가 얼마나 헛된 일이며 위험한 시도인지를 보여 준다.(18)

 포퍼는 진리를 규정적 개념이 아니라 규제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지식을 탐구함에 있어서 우리의 관심은 진리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20)

 그러므로 포퍼는 형이상학적 주장들이 비과학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형이상학이 과학을 자처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25)

 지적 탁월성의 본뜻은 비판정신이며, 지적 독립성인 것이다.(25)

 과학적 진술이 참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험에 의해 검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경험을 통한 반증을 견디어 냈기 때문이다.(28)

 과학적 활동의 밑바탕에는 다른 인간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상상력과 통찰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과학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반증 가능성, 반박 가능성이다.(29)

 포퍼는 마르크스의 철학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것들이 원천적으로 반증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철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나 이데올로기이다.(31)

 포퍼에 의하면 우리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진리의 소유'가 아니라 오류를 줄여 나가는 공동의 작업을 통한 '진리에의 접근'이다.(31)

 만일 토론과 비판의 자유를 막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의 길이 열려 있는 사회를 포퍼는 열린 사회라고 부른다.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적 인식, 즉 '우리 모두는 틀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제도적 승인에 터잡은 사회가 열린 사회이다. 동시에 '오류 가능적 존재'인 인간은 그러나 비판과 토론의 민주적 의사결정의 과정을 통해서 오류를 줄여 나갈 수 있다.(32)

 맹신의 진리가 진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보다 소중하게 평가되는 닫힌 사회와 달리 열린 사회는 다수이건 소수이건 각자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고,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미신과 운명에 이성을 내맡기지 않는다.(34)

 열린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들 각자가 과거의 전통이나 사고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상상력과 감성을 동원하여 수행되기를 바라는 것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피드백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대담하게 제시되고 경험의 빛에 비추어 부단히 오류가 제거될 것이다.(35~36)

 아테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 페리클레스는 "우리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책을 고안하거나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가 아니다. ...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유사결정의 제도적 틀로서 비판과 토론이 현실적 힘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이다.(39)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국가 형태, 즉 전제 정권이나 독재 정권을 피하는 수단이다.(39)

 정부는 힘센 자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모두는 그 정부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45)

 자유의 값은 영원한 불침번이다. ... 어떤 사람일까? 포퍼가 말한 비판적 이성을 소유한 사람, 사실에의 존중과 비판과 토론에 열려진 정신, 타인과 자신의 오류에 대한 관용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타적 개인주의의 윤리를 지닌 사람이다.(47)

'옮긴이 서문' 중에서

제 1 부 대화 1. 20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1991년)

1. 전쟁과 평화, 그리고 공산주의

 하지만 1919년 7월,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나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52)

 나는 이미 그때 이후 일생동안 줄곧 나의 관심사가 되어 버린 중요한 문제, 즉 공산주의를 찬성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57)

 공산당 지도자들은 무서운 일이 벌어질수록 세상은 더욱더 좋아진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63)

  2. 다시 돌아보는 마르크스주의

   <자본론> 공부를 시작한 다음에 주요 논변들이 다음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없으며 오로지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원한다면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고통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논변입니다. 노동자의 운명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를 파괴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셋째, 매우 흥미 있고 중요한 논변으로서, 자본가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가들 자신이 체계의 희생자들입니다. 이 점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결코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68)

 그는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분명 오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매우 복잡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72)

 3. 1962년 - 사하로프, 흐루시초프, 그리고 소비에트의 후회

 소련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것은 동독인들이 헝가리를 거쳐서 서독으로 탈출한 사태에서였습니다.(96)

4. 오늘날의 정치적 의제 - 법의 지배와 교육 문제

 첫 번째는  평화입니다. .. 두 번째는 인구 폭발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모든 사람들이 협력해야 하는 세  번째 중요한 점은  교육입니다.(105~106)

 만일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있고 그 효과를 고려한다면, 검열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107)

 우리는 아이들을 적절하게 교육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109)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사회를 필요로 합니다. 나의 자유와 당신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둘이 서로를 향한 폭력을 포기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109)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욱 도덕적인 의무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설계할 수 있는 최선의 영향을 주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입니다.(111)

 좋은 정치적 모델은 문화적 지도력을 확립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임무라고 여기지 않는 민주주의일 것입니다.(112~113)

 민족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법의 지배에 위험합니다.(11120)

5. 역사주의를 넘어 열린 미래로

 역사주의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음으로 해서 자신이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으로 매우 그른 태도입니다. 당신도 원하는 만큼 역사를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강 또는 언제나 단지 은유일 뿐인 어떤 것과 같습니다. (122)

 지금부터 우리의 의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생각하며, 지금부터 그것이 좀더 잘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걸 미래를 예견하는 데  투사할 수는 없습니다.(123)

 역사에서 일어나는 실제 사건들은 언제나, 예를 들면 전자 혁명처럼 예견할 수 없는 혁명입니다.(126)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보호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언제나 옳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닙니다. 다수는 가장 커다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31)

 오늘날 아이들은 유일하게 남은 거대한 약자 집단이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133)

 제 2 부  대화 2.  세기의 문턱에서(1993년)

 6.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사실, 유럽의 상황은 매우 평화로워서 테러 정권으로 회귀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147)

 무언가 일어난 다음에는 평화로 인도할 수 있는 타협이란 없습니다.(150)

 범죄자들과 타협하는 방식으로는 한 나라 안에서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152)

 인류의 구체적 역사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역사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과 투쟁 그리고 수난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155)

 7. 텔레비젼은 인류를 타락시킨다, 전쟁처럼

 텔레비젼은 오랜 시간의 발전 기간을 겪었으며 과거 10년 또는 15년 사이에 완전한 영향력을 획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치 우박이 쏟아지듯이 쇄도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들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가망은 없습니다.(167)

 시장이 기능을 발휘하려면 규칙이 필요할 뿐 아니라 신뢰, 자기수양, 협동 등의 덕목들도 필요합니다.(169)

 텔레비젼은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힘, 전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영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계속해서 우리를 문명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경사면으로 인도할 것이며, 선생님들을 그 사태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만들 것입니다.(169)

 제 3 부 반성. 민주주의와 역사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8. 민주국가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반성

 독재 권력은 우리가 책임질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우리 스스로 변경할 수 없는 상황을 강제적으로 부과한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독재 정권이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이다.(218)

 우리는 국가가 권력을 요용하는 것을 막을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의 오용을 막을 국가가 필요하다. (222)

 어느 누구도 타인의 복지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나의 행복이 이루어지기를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각의 사람은 그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225)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하거나 불행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234)

 우리는 대중 매체가 자신의 본분을 다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진실을 보고 진실을 이야기하도록, 그 자체가 표현하는 숨겨진 위험을 깨닫도록, 자기 비판적인 태도를 개발하도록(건전한 조직이 그헣듯이), 자기 스스로 잘못된 점을 고치도록 대중 매체를 설득해야 한다. 이것은 대중 매체에 부과된 새로운 과업이다. 그러나 대중 매체는 현재 크게 해가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240)

 9. 자유와 지적 책임(1989년 연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의 이념과 바람, 우리의 희망과 공포에 달려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우리가 미래의 열린 가능성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다.(241)

 그러므로 아테네 시대 이래 줄곧 '민주주의'는 독재 정권, 즉 전제 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 정체에게 전통적으로 부여돼 온 이름이었다고 학교에서부터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247)

 선거일은 새로운 정부에게 적법성을 부여하는 날이 아니라, 과거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재판하는 날, 즉 과거 정부가 그 동안 자신들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날이다.(249~250)

 나는 독재 정권은 참을 수 없고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254)

 쇼펜하우어의 윤리는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분명하다. 말하자면, 그의 윤리는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일을 하거나 상처를 입히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모든 사람을 도와 주라'는 것이다.(255)

 정통과 이단의 이념은 우리 지성인들이 특히 감염되기 쉬운 아주 작은 악덕들, 즉 우리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거만함의 악덕, 현학의 악덕, 허영심의 악덕 등을 숨겨둔다.(256)

 세계는 쉽게 지배되지 않는다.(259)

 자연은 쉽게 통제될 수 없다.(259)

 우리는 바퀴벌레들이 하듯이 우리 앞에 있는 지반을 주의 깊게 느껴야 하고, 매우 겸손한 태도로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전지적인 예언가들의 말을 암송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265)  

2001.12.16일 일직하면서 읽다.                 

 

  포퍼(Karl Raimund Popper)는 1902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 음악 등을 전공했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포퍼는 한 때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마르크스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발견하고 곧 결별했다. 포퍼는 1930년대 유럽 사상계의 중심적 위치에 서 있는 오스트리아 빈 학단의 논리실증주의에 맞서 반증가능성을 기축으로 하는 방법론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20세기 과학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1936년 포퍼는 나치스의 폭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을 떠난다. 그곳 대학에 철학을 가르치면서 완성된 기념비적인 책이 저 유명한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다. 전체주의의 오류를 체험한 그는 이 책에서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사상적 배경을 철저히 파헤쳐 그 위험성을 경고하여, 전후 사상계에 일대 파문을 던졌다.
 나치스의 항복 이후 포퍼는 런던대학에서 논리학과 과학방법론을 강의하였고,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인으로 전체주의와 싸운 지성사적 공헌이 인정되어 1965년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주요저작에 < 과학적 발견의 논리 >, < 역사주의의 빈곤 >, < 추측과 논박 >, < 객관적 지식 > 등이 있으며, 1994년 생을 마쳤다.

 이상헌은 1966년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논문으로는 <선험적 종합판단과 도식>이 있다.

 

[발췌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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