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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http://march.kwedu.net/mm/mm-19.html

 

제19강의

 

포스트모더니즘 및 구성주의 교육

 

 

Ⅰ.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일반적으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다 구체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에 새롭게 나타난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것은 문학, 건축, 미술 등의 예술분야를 비롯하여 철학, 미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학문분야 전반에서 나타난 기본적인 인식체계의 변화 현상을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후기 산업사회, 정보화사회, 소비사회의 새로운 특징들을 대변하고 정당화하는 시대사조 혹은 문화논리를 일컫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처음으로 강조되어 사용된 것은 피들러와 핫산 등과 같은 문학비평가들에 의해서였다. 1970년대 초기 및 중엽에 접어들면서 건축 및 각 예술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고, 미국에서 촉발된 포스트모더니즘은 파리와 프랑크푸르트를 통해 유럽에 전파되어 1980년대에 들어서는 서구사회의 지식인들간에 매우 폭넓게 수용되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기초를 구축한 대표적 학자들로는 철학 분야의 자크 데리다 장 프랑소와 료타르, 역사 분야의 미셀 푸코, 정신분석학 분야의 질 들뢰즈, 정치철학 분야의 허버트 마르쿠제, 장 보드리야르, 과학철학 분야의 토마스 쿤, 문학이론 분야의 롤랑 바르트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의 범위는 인문과학은 물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 예술, 문학뿐만 아니라 교육(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교육에 대한 이론적 이해나 실천에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 특정한 하나의 이론체계를 기초로 전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기인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지향하고 있는 경향 자체가 불확정성, 상대성, 다원성과 같이 제한적인 규정을 거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를테면 일종의 분위기와 같은 것, 있는 것 같지만 꼭 집어 무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그 무엇, 실재하는 것 같긴 하지만 실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그 무엇, 바로 이러한 특질을 지닌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마치 케에르케고르,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을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 자체가 반(反) 실존주의적 태도인 것처럼,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려는 노력 자체가 비(非) 혹은 반(反)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일지도 모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학문적 측면으로 나누어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정치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이론과 실천 등을 규제해 왔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의 대립구조가 해체 또는 붕괴되기 시작하고, 환경문제, 여성문제, 인종문제, 지역사회문제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비이데올로기적인 일상생활 문제에 관한 이론과 실천의 정당화 근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였다.

 

둘째, 경제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다국적 자본에 의해 소비가 덕목화되어 부추겨지고, 주체적 자아 및 비판의식의 해체가 시도되는 다국적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덕목으로 정당화하거나 주체적 자아 및 비판의식의 해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 이론적 근거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셋째,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조직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사물이 기호화되고 기호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은 불가피하다. 복잡하고 큰 규모의 사회를 정보통신망의 도움 없이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과 사물의 기호화와 기호적 의미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 이론적 근거로서 등장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넷째,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20세기 후반 사회는 문자시대에서 영상시대로 전환되었는데, 이에 따라 이성중심에서 감성중심으로, 논리적 심사숙고에서 감각적 판단으로, 동질지향적 가치관에서 이질지향적 가치관으로, 자기절제에서 자기표현으로, 억제된 감성에서 해방된 감성으로 정적 문화의 축에서 동적 문화의 추구로, 소유욕구에서 소비욕구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관의 변화를 정당화할 근거로서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다섯째, 예술적 배경을 보면, 모더니즘 예술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예술적 독창성이다.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새로운 차원의 예술성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각 장르의 예술에 더 이상 새로운 차원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의 예술가들 사이에는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보다는 기존의 예술작품을 새롭게 다루는 예술적 기법을 시도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예컨대, 파스타쉬 기법이나 패러디 기법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예술적 독창성이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는 예술가들의 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으로서 등장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여섯째, 학문적 배경을 보면, 기존의 학문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인과적이고 계량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학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모든 학문은 고전물리학처럼 과학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고전물리학적 과학이라는 학문의 절대적 전형이 무너지고, 학문과 비학문의 경계도 무너짐으로써 학문적 다원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의 이러한 학문적 상황을 정당화시켜 줄 이론적 근거가 요구되었는데, 이러한 요구와 더불어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Ⅱ.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특징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더니즘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크게 보면, 이 양자간의 관계에 대해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양자를 연속의 관계로 파악하는 입장인데, 이 경우 'post'라고 하는 접두어가 'after'의 의미로 해석된다. 다른 하나는 단절의 관계로 파악하는 입장인데, 이 경우에는 'anti'나 'against'의 의미로 해석된다. 또 다른 하나는 양자의 관계를 연속과 동시에 단절의 관계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김욱동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 현상만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모더니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적인 개념이기보다는 오히려 질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관계는 단순히 연속이나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며 발전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단절"(「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현암사, 1994, pp. 190-191)이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중적 양면성을 강조하며 모더니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더니즘이란 17세기 데카르트 이후에 서구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가리킨다. 계몽주의적 세계관은 인간이성과 합리성, 실재와 진리, 객관성과 중립성, 법칙과 논리, 그리고 구조와 분석 등의 개념들이 핵심적인 근간을 이루는 관점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근거가 존재한다는 신념체계이다. 이러한 모더니즘과의 관계와 관련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 하에 서로 모순된 입장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 다양하며, 그로 인해 일관성 있게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반합리주의이다. 이성적 합리성은 근대인에게 요구되었던 사고와 행동의 전형이다. 근세 사회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인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이성적ㆍ주체적 자아라는 것은 일반인을 속박하기 위하여 만든 허구의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의 자아란 유희적 관계망을 가진 언술의 산물이며, 따라서 자아는 우연적ㆍ타율적ㆍ분열적ㆍ모순적이므로 결코 합리적 사고와 행동의 주체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속박에 지나지 않으므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간은 결코 합리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주장한다.

 

둘째, 상대적 인식론이다. 서양의 전통적인 지식관은 고정불변의 실재를 전제하고, 이 실재를 인간은 합리적 사고를 통하여 인식할 수 있으며, 인식 결과는 보편 타당하다는 합리적 지식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식관은 근세 이후 보편적인 주제라고 강변되는 진보 및 해방과 같은 큰 주제를 중심으로 거대서사(grand narrative)를 이루어 학문활동을 비롯한 삶의 양식을 규정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보편 타당한 지식을 추구하는 지적 탐구활동의 기초란 없으며, 따라서 모든 인식활동은 인식자의 주관에 따른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불변의 실재와 그것에 대한 합리적 인식은 허구라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지식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정 담론과 삶의 양식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위한 권력적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탈정전화(脫正典化)이다. 근대 사회 문화적 정전은 보편적 진리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정전에 부합하는 생활양식은 고급문화로 간주되어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인정, 수용, 계승하게 한다. 그런데 보편적 진리란 근거 없는 해체의 대상이라는 포스트모던 사상가의 견지에서 볼 때 정전이란 의미가 없으며, 고급 문화와 저급 대중문화의 구분 또한 무의미하다. 근대 사회에서 문화적 정전으로 간주된 것도 백인, 남자, 성인, 수도지역의 생활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특정 생활양식을 정전에 부합하는 고급문화로 규정하여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오히려 사고방식의 차이, 생활방식의 차이를 권유한다. 그들에 의하면 차이의 인정과 존중이야말로 포스트모던적 사고방식이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다양한 생활양식이 혼재하는 문화적 다원주의이다.

 

넷째, 유희적 행복감의 향유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대중은 주체적 자아의 확립, 보편적 진리의 습득, 고급 문화에의 입문 등의 문제로 긴장하거나 갈등할 필요가 없다. 가상실재로 엮여져 있는 세상사를 총체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역사 또한 의미의 끝없는 유희장소로서 텍스트에 지나지 않으므로 포스트모던 사회의 대중들은 총체성이이나 역사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 포스트모던 사상가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과 자기 주변에 대한 실험적ㆍ유희적ㆍ감성적 접근태도를 갖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역사적ㆍ도덕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유희적 행복감을 향유하는 것이 자연현상과 인간의 본질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한편 김정환 등은 반정초주의(anti-foundationalism), 다원주의, 반권위주의, 연대의식의 표방 등(「교육철학」, 박영사, 1998, pp. 335-337)을, 유혜령은 비재현성(非再現性) 및 비제시성(非提示性), 불확정성(不確定性) 및 불확실성(不確實性), 다원성 및 상대성, 자체반영성 등(허숙 외 편, 「교육현상의 재개념화」, 교육과학사, 1997, pp.79-90)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심성보는 총체성의 회의: 거대서사의 거부, 타자성의 정당화: 정전의 다수성, 자기한계적 인식 태도 등(「전환시대의 교육사상」, 학지사, 1995, pp.30-31)을, 조화태는 인간주체성의 강조, 사회적 협동과 대화의 강조, 전통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등(강영혜 외, 「현대사회와 교육의 이해」, 교육과학사, 1996, pp. 21-29)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들고 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의 이론이나 원리를 가지고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통제하는 전체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현대문화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이란 진리와 지식,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이론체제나 사고체제에 있어서 그것이 갖는 절대 객관성과 확실성을 부정하고, 그의 다원성과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들이 가졌던 권위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해체함을 그 일차적 특성으로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대를 하나의 진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사회, 즉 수많은 담론이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는 포스트모던의 사회라고 말한다.

 

 

Ⅲ. 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

 

서구 근대화이래 나타난 대중적 공교육체제는 합리성, 체제성, 보편성, 객관성, 조직성, 효율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하는 모더니즘을 근간으로 발전해 왔다. 교육은 통상적으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과 보편적인 가치체계를 가르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가치체계는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시ㆍ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수용해야 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간주되는 제반 지식과 가치는 실제로는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특정한 관점과 세계관에 기초해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가치체계는 다른 상황에서 혹은 다른 관점이나 세계관에서 보면 전혀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상대주의적 견해는 교육에 뿌리깊이 박혀있던 신념과 인식체계의 근거를 와해시키고 있다.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상대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으로 이미 무장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 문화에 물든 학생들이 교사의 지적ㆍ도덕적 권위를 예전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을뿐더러, 교사가 가르치고자 하는 지식과 신념의 보편적 의미나 가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적 문제의식은 결국 교사 또는 교육학자들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기존의 접근방식을 진지하게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참신하고 새로운 관점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기존의 익숙한 이해방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교육현장에 지적, 도덕적 혼란을 부추긴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당면해 있는 교육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하에서는 전환기적 시대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에 관한 대표적인 견해 또는 입장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지식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다양한 교육내용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보다도 지식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지식과 관련하여 교육현장에 가장 뿌리깊게 박혀있는 신념은 그것이 객관적인 실재세계를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편 타당하며 진리라는 믿음이다. 학교에서 이러한 지식은 교과서라는 형태로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학생들에게 가르쳐질 뿐만 아니라 여러 평가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준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교과화된 지식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식의 보편 타당성과 진리성에 대한 전통적인 신념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프래그머티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결합을 시도한 리차드 로티에 따르면, 교육과 지식을 이성이나 진리 또는 보편 타당성 등의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사실 '특정한 시대의 언어게임이나 사회제도 또는 자기 관념을 영속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지식 또는 신념체계는 완전하며 보편 타당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재구성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지식과 신념체제가 학생들에게 절대적이며 고정적인 것으로 주어지거나 그것을 수동적으로 내면화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특수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ㆍ사회적 산물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 산물로서의 지식과 신념체제가 어떠한 동기와 관심, 가정과 전제, 그리고 어떤 방식의 협동적 노력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그것들이 어떤 제한점과 한계를 갖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지식이나 신념체제를 절대 보편 타당하고 유일한 것 그리고 당연히 옳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대안적인 지식과 신념체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다른 관점과 견해에 대해 개방적이고 허용적일 수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푸코의 용어를 빌자면, 한마디로 '한계적 인식태도'(limit-attitude), 즉 다원적이고 유동적인 열린 인식태도, 열린 지식관이 요구되는 것이다. 나아가 교과서 혹은 교육과정 역시 학생들로 하여금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인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누구나 옳은 것으로 믿고 수용해야 할 신념이나 가치관 그리고 지식을 담은 성전으로서의 교과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이며 다양한 사고를 자극하고 주체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학습자료로서의 열린 교과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열린 교과서와 교육과정에서는, 료타르가 지적한 것처럼,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거나 논리적으로 논증 가능한 '인지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동안 가치가 없거나 적은 것으로 치부해 왔던 주변적 요소들(기술적 요소, 윤리적 요소, 미적인 요소 등)도 인지적 지식과 대등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교육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교육방법의 전환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교육에서 중심적인 교육방법은 당연히 전달과 주입이라는 획일적 방식이었다. 일방적인 전달과 주입이라는 독단적인 교육방법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에 무비판성, 수동성, 경직성을 초래해 왔다. 이러한 교육방법으로는 교사와 학생 간에 밀접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지적처럼, 전통적 교육에서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가르침을 받으며,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학생은 아무 것도 모르며, 교사는 훈련시키고 학생은 훈련을 받으며, 교사는 선택하여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고 학생은 동의하며, 교사는 학습과정의 주체이고 학생은 단순한 객체일 뿐인 일방적 관계만 존재하게 된다.

 

지식 및 교육과정의 다원성과 상대성을 기초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전통적 교육의 획일적, 일방적 방법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대화와 토론, 협동, 자율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탐구의 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교육에서는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이 한편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다른 한편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공동으로 지식과 가치를 탐구하며 창조하고 재창조해 나가는 동반자적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학생들의 지엽적이고 주관적인 경험과 느낌, 흥미와 관심, 그리고 판단 등은 더 이상 무시하거나 제거해야 할 몰가치한 것이 아니라, 교사가 갖고 있는 체계적인 지식이나 경험과 동등한 가치와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말은 곧 학생들의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지식과 경험들도 교육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학습자료가 될 수 있으며, 학습내용 및 경험의 선택에 대한 학생들의 자유가 최대한 허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교육에서는 학생들간의 공동학습 혹은 협동학습법을 추구한다. 협력학습이란 학생들이 소집단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맡아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학습방법이다. 이러한 협력학습은 개개인을 격려하고, 학습흥미를 유발하며, 이론보다는 학습현장의 실제장면을 중시하며, 토의ㆍ토론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협력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태도를 익히게 된다.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다원적인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던 사회와 정보화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체제를 요구한다. 근대의 계몽주의와 함께 성장ㆍ발달한 공교육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보편적 지식 및 가치체제의 전달과 주입에 의존하는 제도이다. 18세기 근대 공교육사상의 제창자인 꽁도르세(M. D. Condorcet)는 인간의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그 본질인 이성에 눈뜨고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격으로 무한히 고양되며 그리고 그러한 이성적인 인간으로 고양되어 가는 사람들의 수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진보라고 믿었다. 인간이 본래의 자유를 회복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편견이나 무지를 극복하고 인간정신의 진보를 실현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교육의 고유한 임무가 발견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이성을 계발하여 편견과 무지를 극복하고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식과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교육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논리에 기초하여 교육에 대한 기획과 운영 그리고 통제를 전체적으로 국가사회가 주도하는 공교육이 성장, 발달해 온 것이다. 그 결과 공교육체제는 필연적으로 획일성과 경직성을 그 특징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변화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전통적인 공교육체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거대서사(grand narrative)보다는 소서사가, 총체성ㆍ전체성보다는 국부성ㆍ파편성이, 중심성ㆍ자아성보다는 주변성ㆍ타자성이,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동일한 교육목적(표)을 위해 동일한 교육내용을 동일한 교육방법으로 가르치는 교육체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 적합한 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체제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교육이 기존의 공교육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편에서는 기존의 공교육체제에 포함되는 학교교육 내에서 경직성과 획일성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운영방식을 모색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학교교육에 대한 여러 형태의 대안적 교육모델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열린교육, 대안교육, 홈 스쿨 등도 결국 포스트모던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체제 혹은 학교를 위한 실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교육은 학생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교육에서 학생은 지식이나 가치를 주어지는 대로 배워나가고 수용해 나가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학생 개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능동적인 역할과 주체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저해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에 볼 때, 그들이 미성숙자라고 하여 학생들의 목소리를 소외시켜서는 안 되며, 그들도 인간 주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학생을 백지(tabula rasa)로 보거나, 미성숙을 이유로 단순히 배움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마음대로 휘둘러진 정전(正典)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지식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초하는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 기호, 사유 및 행동 양식 등에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그들이 지닌 비판적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상상력을 충분히 신장, 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Ⅳ.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적 적용이론으로서의 구성주의

 

1. 구성주의의 개념

 

21세기 사회를 일컬어 흔히 정보화사회라고 한다. 정보화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자원이 되는 사회로서 변화, 불확실성, 다원주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 창의성 등으로 특징화되는 사회이다. 이러한 정보화사회의 도래와 함께 교육환경도 많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교사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지배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즉, 수동적인 학습자 대신 적극적인 학습자의 역할, 지식전달자로서의 교사대신 학습자의 학습을 도와주는 조언자, 촉매자로서의 역할, 탈상황적 지식의 습득에서 특정상황에 기반을 둔 지식의 습득, 그리고 비현실적인 지식의 습득대신 실제성을 지닌 지식의 습득이라는 대안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대안책으로 최근 구성주의적 교육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구성주의란 한마디로 말하면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보는 인식론의 한 유형으로서 17세기 이후 20세기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 양식을 지배해 왔던 객관주의 혹은 합리주의 인식론에 대한 대안적 이론체제이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대 인식론자들은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세계를 가정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는 그 자체의 질서와 법칙이 내재되어 있는 독립적인 자기 폐쇄적 세계이다. 인식이란 엄밀한 관찰과 사유를 통하여 그 객관적 세계를 아무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표상 혹은 반영하는 행위이다. 객관적 실재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우리의 마음에 반영될 때 그것은 참된 지식이요 진리가 되며, 대상을 인식하는 자아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요컨대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실재세계를 반영 혹은 표상을 통해 과학적ㆍ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인식을 통해 형성된 지식과 진리는 초공간적, 범우주적인 것으로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성주의는 이러한 객관주의의 절대적ㆍ객관적 인식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구성주의에 따를 때,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사회의 특수한 상황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각 개인은 그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제반 사회적 경험의 영향에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인식을 더해 삶을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구성해 나가게 된다. 그 결과 생성된 것이 지식이다. 지식은 완성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보편적이거나 총체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생성과 재구성의 과정에 있으며, 특수하고 제한적인 것이다. 이렇게 구성주의에서는 보편적이거나 객관적인 지식과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구성주의에서 구하고자 하는 최종목표는 객관주의에서의 절대적 진리나 지식이 아니다. 대신 구성주의에서는 개인이 이 현실을 살아가고 이해하는 데 본인에게 의미 있고 적합하고 타당한 것이면 그것을 진리요 지식이라고 보며, 이런 지식과 진리를 구성해 나가는 것과 그 과정이 구성주의의 최종목표가 된다.

 

2. 구성주의 교육의 두 유형

 

구성주의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인지적 구성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구성주의이다. 구성주의를 이렇게 두 유형으로 구분하는 준거는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인지적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 역할, 범위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전자의 경우는 지식의 형성 과정에서 각 개인의 인지적 작용을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보는 입장이며, 후자는 개인이 참여하고 속해 있는 사회, 문화, 역사적 상황을 주요한 요인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하에서는 구성주의의 대표적 유형인 인지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의 교육적 주장과 견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인지적 구성주의

 

인지적 구성주의는 지식의 구성과정에서 개인의 인지적 경험과 작용을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한다. 인지적 구성주의는 인간은 객관적 세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적 현실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즉 개인의 삶 속에서 가지게 되는 경험은 개별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할 경우 그 경험이 지니는 개별적 의미가 상실되고, 개인에게 있어서 일반화된 경험보다는 개별적 경험이 삶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지식은 그가 삶을 사는 동안에 개별적으로 경험한 것이며 또한 구성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는 인지적 구성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들로는 Piaget, von Glaserfeld, Fonst, Cobb 등이 있다. 이 인지적 구성주의는 특히 Piaget의 발달심리학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Piaget에 따르면 인간에게 서로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네 가지 종류의 인지구조가 있는데, 각 인지구조는 대체로 연령의 증가와 더불어 순서적으로 나타나며 역행하지 않는다. 상위의 인지구조는 인지에 있어서 형식성이 증가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지의 형식성이 낮은 하위의 인지구조를 포괄한다. 형식성이 낮은 하위의 인지구조에서 형식성이 증가한 상위의 인지구조로 변환되는 것을 발달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형식성이 보다 보편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형식이 낮은 단계로 퇴행되지 않게 된다. 이 점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성을 지니는 구조가 된다. 그러나 개인에게 있어서 발달의 정도와 속도는 상이하다.

 

그렇다면 각 개인의 발달은 어떠한 요소에 의해 어떻게 결정될까? Piaget는 동화(assimilation), 조절(accommodation), 평형(equilibration)의 개념으로 이 문제를 설명한다. 동화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새로운 것을 조화시킴으로써 그것을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조절이란 새로운 사태가 기존의 인지구조에 맞지 않을 때 기존의 인지구조를 새로운 사태에 맞게 변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평형이란 동화와 조절을 통하여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다. 그에게 있어 동화와 조절을 거쳐 평형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학습이며, 지식의 형성이다. 이렇게 볼 때, 지식이란 이미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각 개인의 발달과정의 틀 안에서 동화와 조절이라는 인지적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Glaserfeld의 견해도 Piaget와 유사하다. 그는 동화와 조절이라는 두 기제로부터 지식의 구성적 성격을 확인하고, 지식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하는 주체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축되며 인지의 기능은 적응적이며 객관적 실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세계를 조직하는데 기여한다고 보았다. 즉 지식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의 경험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존재하는 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는 보이는 대로 존재한다는 말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Fosnot 역시 지식의 구성을 정신적 활동(즉 동화와 조절이라는 인지적 기능)에 기인한다고 보고, 정신적 활동을 통하여 개개인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개인적 해설을 내리고 결과적으로 인지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이해하고 있다. 즉, 학습은 항상 동화의 단계에서 시작되며, 동화적 구조에 부적합한 자극이 왔을 때는 깊은 사고를 통해 조절과 사고의 추상화라는 단계를 거쳐가는 되는데, 이 과정이 학습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인지적 구성주의에서는 지식을 객관적 실재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개인의 인지활동의 결과라고 본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학습이란 새로운 상황에서 기존의 인지적 평형상태가 와해되어 인지적 혼란이 야기되고, 다시 인지적 평형상태로 복귀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지적 평형상태로 복귀한 결과가 바로 지식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지적 구성주의에서 교수란 학습자가 인지적 혼란상태를 극복하고 인지적 평형상태로 복귀해 나가는 과정을 돕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사회적 구성주의

 

인지적 구성주의가 지식 구성의 근원을 인간 개개인의 주관적 경험에서 찾으면서 결과적으로 그 개인이 놓여 있는 사회적 상황 또는 맥락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구성주의라는 기본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인지적 구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난 것이 바로 사회적 구성주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구성주의는 개인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ㆍ문화적, 역사적 상황을 지식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본다. 즉, 각 개인이 구성하는 현실과 지식은 특정한 사회 공동체 속에서 타인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합의된 혹은 공동체적으로 인정되거나 용인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인지의 발달 혹은 지식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이 개인적으로 내면화되어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성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들로는 Vygotsky, Rorty, Rogoff, Bruffee, Lave, Cole, Cunningham, Wertsch 등이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Vygotsky의 사회발달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Vygotsky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인간이 사회를 만들어 그 속에서 상호 작용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이 상호작용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의 유의미적인 행동을 다른 구성원에게 전달할 수 있는데, 그 매개체로서 언어나 글과 같은 기호들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러한 기호체계가 인류 역사의 과정과 사회 형태 및 그 사회의 문화적 발달 수준의 변화 과정과 더불어 성립하고 발전한다. 또한 사회, 문화적으로 발생된 기호 체계의 내면화는 각 개인의 행동의 변화와 발달 형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러한 점에서 개개인의 발달 혹은 변화는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에 기초한다.

 

Vygotsky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각 개인의 인식 발달에 있어서 사회적 교류가 매우 기초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식의 구성 혹은 학습이 처음에는 사회적 수준에서 개인 상호간에 나타나고, 그 다음으로 개인적 수준에서 개인 내부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식의 구성이나 학습이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개인적 영역으로 전환되는 이 과정을 일컬어 그는 '내면화'(internalization)라고 하였다. 또 그는 인지발달의 가능성은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라는 특정한 기간에 한정되어 있으며, 근접발달영역의 완전한 발달은 사회적 교류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즉, 학습은 그 영역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지닌 다른 사람이 도와줄 경우 학습자 개인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나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학습을 도와주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 부모나 교사 혹은 동료학생일 수도 있다. 또한 학습자의 학습을 돕는 방식은 기존처럼 지식이나 기술을 일방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안내나 조언 혹은 협력의 방식이다. 따라서 학습자가 모든 문제해결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안내자/조언자로서의 관여 정도를 점진적으로 줄여가고, 결국에는 관여가 완전히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구성주의 교육의 교수-학습원리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지식이란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인식활동을 통해서 혹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또 학습자가 지식을 구성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학습의 과정이며, 학습자의 학습을 돕는 활동이 바로 교수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구성주의에서 교수와 학습은 서로 독립되어 있는 별개의 활동이나 과정이 아니다. 이하에서는 구성주의에서 추구하는 교수-학습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구성주의의 학습원리

 

첫째, 학습은 발달의 결과가 아니라, 학습이 곧 발달이다.

학습은 학습자 스스로의 발명과 자기조직을 요구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생성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신의 가설과 모형을 산출하고 이들의 적합성 여부를 검증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둘째, 불균형이 학습을 촉진한다.

인지적 갈등과 혼란은 학습을 위한 자극이며 이것이 학습될 내용의 조직과 본질을 결정한다. 따라서 실제적이고 유의미한 맥락에서의 도전감 있고 개방적인 탐구가 강조되어야 하며, 긍정과 모순이 되는 다양한 대안을 탐구, 산출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모순되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탐구, 토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셋째, 반성이 학습의 원동력이다.

인간은 의미의 구성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표상적인 방식으로 조직, 일반화하고자 한다. 반성적 글쓰기를 통한 반성의 시간을 줌으로써 광범위한 경험을 다양한 상징적인 방식으로 표상하고, 이들간의 관계를 논의함으로써 반성을 촉진할 수 있다.

 

넷째, 학습은 원래 사회적, 대화적 활동이다.

공동체 구성원들간의 대화가 깊이 있는 사고를 촉진시킨다. 교실은 다양한 활동과 반성적 사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대화 공동체이다. 교사가 아니라 학습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교실의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 정당화하는 책임을 지녀야 한다. 지식은 개인적인 이해의 적합성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협상을 통해 진전된다. 따라서 구성원들에게 공유되는 아이디어만이 유용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섯째, 학습은 구조의 발전을 지향한다.

학습자들이 의미 구성을 위해 노력할 때, 관점에 점진적인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져 보다 큰 아이디어를 구성하게 되며, 이는 곧 다양한 경험에 일반화될 수 있는 핵심 조직 원리가 된다. 이러한 과정은 발달의 과정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여섯째, 학습은 상황에 기초하여 일어난다.

학습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풍부한 맥락, 실세계 상황이 반영된 실재 상황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일곱째, 학습은 구성적, 능동적 과정이다.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구성되며 학습은 학습자가 지식을 내적으로 표상하는 구성적 과정이자, 경험에 기초하여 의미를 개발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여덟째, 학습은 도구와 상징을 통해 촉진된다.

학습은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의미의 구성은 도구(물리적 수단과 기능)와 상징(언어, 수, 지도 등과 같은 기호적 수단과 기능)의 활용을 통해 촉진된다.

 

아홉째, 인간의 궁극적인 성취는 앎의 방법을 아는 것이다.

앎과 학습의 과정을 스스로 점검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즉 반성적 사고야말로 인간이 지녀야 할 중요한 능력이다. 반성적 사고는 우리가 더불어 살고 있는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창조할 수 있는 핵심 요인이다.

 

2) 구성주의의 교수원리

 

첫째, 학습에 대한 책무성과 주인의식 및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학습이란 지속적인 자기구성의 과정이다. 자신의 학습에 대한 주인의식과 학습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학습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을 구성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호를 제공해 주어야 하며, 교육과정도 학생들의 주장과 의견을 반영하여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수업을 구성의 주체인 학습자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과제를 설계하여 유의미한 맥락 속에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학습을 의미 있는 것으로 느끼고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학습의 필요성과 이유를 명료하게 밝혀주고, 학습한 내용이 실제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선행 지식을 초대한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수업을 실제 상황과 관련시킴으로써 내용의 유의미성을 증진하며,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습과제를 단순화해서는 실생활에서 당면하게 될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제해결 기능을 최대한 촉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상황을 직접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고등 수준의 지식 구성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지식과 기능을 단순히 전달하기보다는 학습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특정 상황에 대한 예측과 핵서 및 가설을 설정하도록 하고 스스로 탐구, 실험하도록 하는 등 고등 수준의 사고를 촉진하는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조건들이 다양하게 주어졌을 때, 내용과 문제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재조명하도록 격려하고 자신의 아이디어, 전망, 방책과 기법, 절차와 접근 그리고 해결안 등을 스스로 명확하게 표현하여 제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넷째, 협동학습을 통해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해야 한다.

학습은 대화적, 사회적 과정이다. 구성주의적 교수-학습을 위해서는 협동적 학습환경이 중요하다. 대화를 통한 상호교류와 반성적 사고, 생성적 학습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비위협적이고 안전한 학습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학습자가 의기소침하고 위축되면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시도를 하다보면 항상 잘못과 실수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긍정적이고 구성적인 피드백과 격려를 통해 도전감과 자신감을 고취시켜 주어야 한다.

 

여섯째, 학습내용과 학습의 과정 및 성과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자신의 학습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학습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학습한 내용과 학습활동의 과정 및 성과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해 보도록 해야 한다. 반성은 자기 평가를 통해 차원 높은 사고 기능을 정련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반성을 의사결정과 문제해결 방법 등에 대해 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곱째, 다양한 관점들을 경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 세계의 문제들은 한 가지 접근이나 방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해를 검증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대안들을 설정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그들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이해하며, 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여덟째, 다양한 표현 양식을 활용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교수-학습 현장에서 가장 보편적인 지식 전달 방식은 구두와 서면을 통한 의사전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에만 집착하게 되면 학습자들이 세계를 조망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제한하게 된다. 보다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디오, 컴퓨터, 사진, 음향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

 

아홉째, 실제 수업의 맥락에서 학생들의 학습을 평가해야 한다.

창의적,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 등의 고차적인 교육목적의 성취와 복잡하고 실제적인 맥락에서의 능동적인 활용 여부 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수행평가, 포트폴리오 등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평가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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