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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 역사결정론 거부한 비판적 합리론자

 

칼 포퍼(K. R. Popper)는 1902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에서 1928년에 걸쳐 비엔나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철학 등을 전공하면서 수학했고, 1928년 「사유 심리학의 방법론 문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과학철학이었다. 1934년에 그는 그의 처녀작이자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의 존재를 확인시킨 『탐구의 논리』를 출간했다. 이 덕분에 1935년부터 ’ 36년에 걸쳐 영국의 여러 대학에 초빙되어 강의를 하게 되었고 ’ 37년에는 뉴질랜드의 켄터베리 대학에 철학강사로 초빙되었으며 얼마 있다가 그곳에서 철학교수로 임명되었다. 2차대전 후 그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런던 경제대학 교수로서 ’69년 퇴직할 때까지 논리학과 과학 방법론을 강의했다. 은퇴 후에도 그의 탐구는 정열적으로 계속되어, 1994년 타계할 때까지 그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했다.

포퍼는 과학철학자로서는 특이하다 할 만큼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민감했고, 이 방면에 있어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이것은 아마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그의 아버지의 영향과 1차 대전 말기부터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을 휩쓴 공산주의 혁명 및 이에 대항하는 파시즘의 등장 등으로 극히 혼란했던 상황 속에서 그가 성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한때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의 전체주의 사상이 갖는 비인간성에 환멸을 느끼고 진보적 자유주의의 대변자가 된다. 그의 사회철학을 대변하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술된 것이다.

 

비판적 합리주의

포퍼의 사상을 우리는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 부른다. 이러한 명칭은 포퍼가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 경험이나 감정의 역할보다는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합리주의의 전통에 서면서도 독단적 이성 대신에 비판적 이성을 주장하는데서 연유한다.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를 실수로부터, 그리고 실수의 계속적인 교정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태도의 원리라 규정한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먼저 인간의 이성은 원래 잘못을 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앎은 언제나 잠정적이고 가설적인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한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비판적 합리주의가 주장하는 인식론의 가장 중심적인 명제이며, 이러한 명제에 따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앎의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된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다음으로 우리의 모든 앎이란 합리적 비판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 합리적 비판의 이념은 인간의 이성은 원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첫 번째 명제와 관련해서 제시된 것으로서, 말하자면 우리가 독단에 호소해서가 아니라 비판적 시험과 논의에 의해서 오류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퍼는 1920년대와 30년대 초에 비엔나 학단이 주장하는 논리실증주의 철학과의 대결을 통해 우리가 오늘날 비판적 합리주의라 부르는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을 현대 과학철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그는 그의 과학철학의 사상을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의 영역에도 적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킨 진보적 자유주의의 철학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철학에 관한 포퍼의 사상은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 1934)』와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 1963)』, 『객관적 지식(Objective Knowledge, 1972)』등에서 발전적으로 전개된다. 그의 핵심적 이론은 반증 가능성의 원리(Principle of Falsifiability)이다. 이 원리는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한 검증가능성의 원리(Principle of Verifiability)와 서로 대칭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어떤 문장이 의미 있는 문장인지 의미 없는 문장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서 검증가능성의 원리를 제시했다. 예컨대 “저 나무는 푸르다.”는 문장 A와 “절대자는 자비롭다.”는 문장 B가 있다고 할 때, A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지만 B는 경험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 B문장의 주어가 되는 절대자는 경험을 넘어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증가능성의 원리에서 볼 때 A는 의미 있는 문장이지만 B는 의미 없는 문장이 된다. 이런 논리 실증주의에 의하면 과학적 지식은 귀납적 방법에 의해 확립된 지식이다.

반증가능성의 원리는 처음부터 어떤 문장의 유의미성을 따지는 기준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구획의 기준으로서 제시된 것이었다. 의미의 문제란 과학철학의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포퍼는 생각했다. 이 원리는 간단히 말해서 경험과학의 체계는 경험에 의해서 반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론으로 규정될 수 있다. 즉, 한 이론이 과학적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론에 모순되는 관찰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경험에 의해서 반증할 수도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은 검증된 지식체계가 아니라 다만 경험에 의해 시험가능하고 반박 가능한 지식의 체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현상을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맑스의 역사이론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실제로는 과학이 아닌 원시적 신화요, 점성술과 유사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박불가능성, 반증불가능성은 이론의 장점이 아니라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동시에 포퍼는 귀납의 방법은 과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보고, 대신에 가설-연역적 방법을 진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우리는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에 부딪친다. 이때 잠정적인 해결로서 가설이 제시되고, 이것이 비판된다. 만약 시도된 해결이 관련된 비판에 개방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배제된다. 시도된 해결이 비판에 개방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반박을 시도한다. 왜냐하면 모든 비판은 반박의 시도로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도된 해결이 우리의 비판에 의해 반박을 견뎌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용인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을 용인한다는 것을 그것을 최종적인 해결로서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욱 비판하고 논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냉혹한 비판에 의해 통제되는 추측에 의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고, 비판적 논의에 의해 그것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갈 뿐이다.

 

역사결정론 거부

이런 앎의 이론을 사회 재구성의 원리에 적용한다면 어떤 사회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수용한다면, 그 사회는 먼저 어떤 형태의 독재든 거부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독재는 궁극적으로 지배자가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론적 독단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회는 비판을 허용할 뿐 아니라, 상호비판과 토론에 의해 오류를 교정하려고 하는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사회를 포퍼는 열린 사회(Open Society)라 부른다.

그렇지만 열린사회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자유방임의 사회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자유방임의 사회는 자유의 역설(Paradox of Freedom)에 의해 유지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유가 제한되지 않았을 때, 그 자유는 자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제한의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여 그 자유를 강탈할 자유까지도 함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유의 제한과 국가보호주의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자유는 국가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한 유지될 수가 없다. 그리고 국가에 의해 보호되는 만큼 그것은 동시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국가가 권력을 오용하는 것을 막을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의 오용을 막을 국가가 필요하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국가보호주의를 경제적 영역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국민을 물리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 할지라도 경제적 힘의 오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적 간섭주의나 경제적 통제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제적 통제주의 역시 지나치게 추구하면 위험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계획을 너무 많이 하면, 즉 우리가 국가에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면 자유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획의 무의미를 의미한다. 따라서 비판적 합리주의에 의하면 자유의 역설만이 아니라 국가계획의 역설(Paradox of State Planning)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 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이라고 해서 그 밖의 어떤 것보다 더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절대적 자유는 넌센스다.

이런 논의에서 볼 때, 비판적 합리주의가 주장하는 열린사회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최대한 조화시키고자 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정치를 이끌어갈 수 있다해도 우리들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정치적 자유의 단적인 표현이며, “국가는 강자가 휘두르는 경제적 힘의 오용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적 평등주의에 대한 지향을 나타내고 있다.

닫힌사회는 전체주의의 사회이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런 저런 관점에서 수행되어 왔다. 그렇지만 전체주의에 대한 포퍼의 비판은 이들과는 매우 색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택한 독특한 전략은 전체주의가 기초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역사주의를 공략함으로써 전체주의를 그 근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것이다.

포퍼가 말하는 역사주의는 전체 역사의 과정이 냉혹한 역사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전개되어 간다는 교설을 가리킨다. 역사주의는 선민사상의 유산이다. 선민사상이란 역사의 배후에는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으며, 신은 그의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도구로서 어떤 민족을 선택했고, 선택을 받은 민족이 이 지상을 다스려 갈 것이라고 가정하는 이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 헤겔, 맑스 등이 모두 역사주의의 핵심적인 인물들이다. 그리고 현대의 가장 중요한 두 역사주의, 즉 우파의 파시즘적 역사주의와 좌파의 맑시즘적 역사주의가 모두 이런 유신론적 역사주의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 그 차이점은 단지 선택된 민족의 자리에 선택된 인종이나 선택된 계급이 대체되었다는 것뿐이다.

역사주의가 부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의 법칙이 참다운 법칙일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사이비 법칙을 인간의 역사에 덮어씌움으로써 인간을 자유로운 창조의 주체자가 아닌 운명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포퍼는 민주주의를 ‘국민의 지배’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국민의 지배’라는 표현은 오도된 것이고 선전문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지배는 보통 소수의 지배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배’는 또한 누가 국가를 지배해야 하는가 하는 잘못된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런 물음에 대해 플라톤의 답변은 ‘가장 선한 사람이면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철인왕이론’이 바로 이것이다. 고대에는 군대에 의해서 선출된 황제가 정답이었다. 그 이후에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적법성을 얻은 군주가 정답이었다. 맑스의 대답은 계급의식이 있는 선한 노동자였다.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은 잘못 정식화된 물음이다. 이런 물음에는 거의 언제나 플라톤의 대답으로 되돌아간다. 오늘날 대중 주권이라는 주장 역시 이런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일 뿐이다. 대중주권의 원칙은 위험스러운 원칙이다. 다수의 독재는 소수에게는 무서운 공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안문제는 지배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더욱 간단히 말하면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선한 지도자를 맞기 위해 당연히 노력해야 하지만 또한 악한 지도자를 만날 경우에도 항상 대비해야 한다. 지도자의 도덕 수준은 거의 언제나 평균이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하는 물음 대신에 사악한 지도자들이 극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실질적인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포퍼의 핵심적 대답은 정부나 국가가 너무 많은 지배력을 행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아테네에서 대중적인 독재자의 부상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도편추방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을 하면서 포퍼는 민주주의를 국민이 지배하는 정치체계가 아니라 전제정권을 피하려는 정치체제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만이 폭력이 아닌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정치적 개혁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틀을 제공해 준다.

역사 전체의 진행 방향이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역사의 결정론을 거부하고, 역사란 이성적 존재자인 우리들 개개인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창조되어간다고 한 점에서, 관용과 상호비판에 기초하여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 포퍼는 우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합리주의자였다. “역사 자체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작은 조정틀의 계속적인 누적에 의해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진주의자였다. 그가 최선의 이상을 추구하는 혁명적 유토피아주의를 거부했던 이유는 독단과 열망에 수반될 폭력과 파괴의 부작용을 염려해서였다. 그는 이성의 독단을 가장 경계했고, 이성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열광을 언제나 위험시했다. “최선의 추구 대신에 최악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라.”라는 그의 사회철학의 명제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발췌 : http://myhome.naver.com/mocs71/popp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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