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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http://march.kwedu.net/mm/mm05.html


제5강의

근세사회의 교육1

- 서양 15~17C


Ⅰ. 르네상스기의 교육적 특징

Ⅱ. 종교개혁기의 교육적 특징

Ⅲ. 실학주의기의 교육적 특징


이번 강의에서는 서양 근세사회, 즉 중세 봉건사회가 막을 내리고 근세적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부터 산업혁명이 발생하기 이전까지의 교육이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시기는 15세기에서 17세기 정도에 이르는 시대로서, 토지를 매개로 하는 봉건제 사회로부터 자본을 매개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기 또는 전환기입니다. 그럼 이 시기의 교육적 특징을 르네상스기, 종교개혁기, 실학주의기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Ⅰ. 르네상스기의 교육적 특징

먼저, 르네상스기의 교육적 특징을 검토해봅시다. 여기에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중세 말기의 시대적 특징들을 잠깐 다시 생각해봅시다. 12∼13세기에 상업경제가 발달하고, 부를 축적한 자유농민들이 그 부를 기초로 새로운 시민계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공간인 상업도시, 즉 자유도시들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때 생긴 도시는 그리스나 로마 같이 귀족들의 집단거주지도 아니고 중세시대 같이 왕이나 영주가 지배하는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상ㆍ공업인으로 구성된 시민이 공동통치하는 시민사회, 시민국가로서의 도시였습니다. 앞 강의에서 설명했던 대학의 성립이나 공립학교(또는 시립학교)의 발달, 그리고 시민교육 등도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바로 이 자유도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14∼16세기초의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도 결국 이 상공업적 자유도시가 낳은 학술과 문화입니다. 르네상스는 부호나 영주, 국왕 등을 보호자로 하는 자유도시의 학자, 문인, 예술가의 활약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봉건적이며 기독교적인 윤리 및 습속, 제도에 반항하고 인간의 자유를 구가하며 비기독교적인 문화를 동경하고 현세의 행복을 최고의 목표로 한다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기독교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인간의 새로운 발견이었으며, 인간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휴머니즘이었습니다. 따라서 르네상스의 본질적인 특징은 인간중심ㆍ개성존중ㆍ개인주의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 중세의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 내세주의가 아닌 현세주의, 금욕주의가 아닌 자연주의, 권위주의가 아닌 이성주의, 억압주의가 아닌 자유주의, 교회 중심이 아닌 개인 중심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내용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르네상스의 정신이 인간 중심적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수도원이나 본산학교, 대학 등을 통해 문학, 예술, 철학 등 그리스의 지적 풍토가 그 전통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는 점 또한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기에 고대 문학을 애호하는 학자들을 일컬어 '인문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 중심이었던 중세의 신학에 대해 인간적인 문학으로서의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학을 애호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을 일컬어 '인문주의'라고 했는데, 결국 인문주의는 르네상스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주의에 기초하는 르네상스 정신은 당연히 교육에도 반영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교육사조를 '인문주의 교육'이라고 합니다. 이 인문주의 교육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유 교양 교육'이었다는 점입니다. 즉, 인문주의는 사고의 자유, 자기표현 및 창의적 활동의 자유가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인문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자유교양이라는 이상을 추구했습니다. 즉, 지ㆍ덕ㆍ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여 인간적 교양을 갖춘 자유인을 길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은 특히 희랍의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사상을 기초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고전중심의 교육'입니다. 인문주의는 지ㆍ덕ㆍ체가 겸비된 자유교양인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고전문학의 학습을 강조했습니다. 즉,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문헌들을 공부함으로써 그 속에 담겨 있는 인본주의적 정신과 사상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단순히 수단 또는 방법이어야 할 고전문학의 학습이 그 자체의 목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교육의 목적인 일상적인 생활 속에 밀접하게 녹아들지 못하고, 고대의 언어와 문학에 국한됨으로써 전인교육으로서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고 좁은 의미의 잘못된 인문주의 교육이 당시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키케로주의'입니다. 15세기말부터 16세기초의 문예부흥기 말기에 로마의 위대한 문장가이자 시인이며 웅변가였던 키케로의 유명한 문장을 맹목적으로 암송하고, 그의 문장구성 형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원래 고전에 담겨 있는 내용과 정신을 이어 받고자 했던 인문주의 교육이 고전의 형식에 열중한 나머지 단순히 고전 문장의 암송과 모방에 급급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 위주의 고전어 교육에 제한된 편협한 인문주의적 경향을 일컬어 키케로주의라고 합니다. 키케로주의는 오늘날에도 실제의 생활 또는 활동과 연결되지 못한 언어 중심의 잘못된 학교교육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적 언어 위주의 학습경향을 언어주의, 사장주의라고 합니다.


Ⅱ. 종교개혁기의 교육적 특징

다음으로 종교개혁기의 교육적 특징을 검토해봅시다. 종교개혁은 중세 말 및 근세 초 유럽사회의 총체적인 변화과정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중세 말부터 인간성 회복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라 교회는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게 되고 그 권위가 계속 실추되어 갔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세속적인 지배세력인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발전하게 되어 교황의 보편적인 지배권력을 견제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상업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시민계층이 형성되고 자유상업도시가 발달하여 교회의 사회경제적 기반이었던 봉건제도를 지속적으로 와해시켜 갔습니다. 또한 이념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기독교적 지배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더욱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 강의에서 이미 말했던 십자군원정의 실패, 흑사병의 창궐, 새로운 지리상의 발견 그리고 여러 과학적 발달 등도 기독교와 봉건질서의 붕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기독교 세력은 총체적인 영역에서 그 기운을 다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날 운명에 처해 있는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온갖 특권과 부를 누려온 봉건 귀족과 교회에 대해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세속 권력과 새로운 시민계층의 대항이 종교적인 측면에서 표면화된 사건입니다.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듯이,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계기는 면죄부 판매에 있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사치가 극에 달해 있는 데다가, 실추된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교권의 상징인 베드로 사원을 웅대하고 화려하게 개축하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경제적 기반이 이미 쇠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면죄부 판매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즉, 면죄부를 산 사람은 죽었을 때 신 앞에 그 면죄부를 제시하면 지옥행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허무맹랑한 교리로 인하여 수많은 기층 민중들이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에 인문주의적 경향성을 지닌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총95개조로 이루어진 반박문을 게시합니다. 즉, 루터는 인간의 구원이 면죄부가 아니라 성서와 각 개인의 신앙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교회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는데, 이에 반해 일반인들이 성서에 입각한 자신의 순수한 신앙을 통해 신과 직접 접촉할 수 있고 구원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루터를 비롯한 인문주의적 종교가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신과 인간의 매개체인 기존 교회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종교개혁세력(신교)과 기존 교회세력(구교)의 대립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교육 분야에도 나타나는데, 양측은 사상투쟁과 세력 확장을 위해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양측은 경쟁적으로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신교와 구교의 교육적 특징을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습니다.

 


신교의 교육

구교의 교육

목적

- 합리적 신앙과 사회적 도덕 도야

- 근대적 기독교도 양성

- 카톨릭 전도자 양성

내용

- 초등:성서와 3R's, 모국어, 인문적 교과 등

- 중등:라틴어, 희랍어, 수학, 논리학, 수사학 등

- 인문적, 종교적 교육과정

방법

- 학년제를 도입하는 등 자연법칙을 수용

- 엄격한 군대식 교육(주입, 훈련, 경쟁, 암기)

- 강의와 반복의 2단계 교육법

사상

- 인격적 종교인 양성을 목적으로 성ㆍ속 존중

- 반종교개혁운동으로 종교적 교육 강화

영향

- 초등보통교육

- 여교사출현

- 중등학교 교육

- 교사교육

사상가

- 루터, 캘빈, 멜란히톤 등

- 로욜라(예수회교단), 라살(예수회동포단)


이어서 종교개혁이 교육에 미친 몇 가지 중요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종교개혁은 성서를 독일어(모국어) 번역하여 교육의 대중화에 기여했습니다. 당시의 구교가 라틴어로 된 성서만을 고집하고 있었음에 반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보급한 것은 일반 서민들이 쉽고도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줌으로써 보통교육이 신속하게 보급되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둘째, 종교개혁은 실용적인 인간을 길러 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종교개혁세력은 신앙의 자유, 그리고 인간 그 자체를 중요시한 결과 아동으로 하여금 즐겁게 교육받을 수 있게 하였으며, 과학적 진리를 허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실제 사회에 유용한 인물을 양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셋째, 종교개혁은 다양한 교육과정의 운영으로 교육으로 하여금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조화를 도모하여 현실적인 사회발전을 강조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초교육으로서의 가정교육의 의미를 부각시켰습니다. 대다수의 종교개혁가들이 모든 국가발전의 기초는 가정교육에 있으며, 자녀교육을 모든 교육 가운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가정교육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강조는 나중에 페스탈로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Ⅲ. 실학주의기의 교육적 특징

이제 마지막으로 실학주의기의 교육적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6∼17세기 유럽은 르네상스,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 등을 거쳐 근대 사회로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착실히 발전해 가는 시기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절대왕정이 성립되어 완전한 근대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가 상업과 공업 중심의 경제체제로 전환되어 가고 있었으며, 문화적으로는 인간 중심적인 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이러한 근대적 특징들은 무엇보다도 과학과 지식의 눈부신 발전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신항로 및 신대륙의 발견, 새로운 천체의 발견, 증기기관의 발명과 자연법칙의 발견, 인쇄술의 발명, 나침반과 망원경의 발명 등과 같은 지리적,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 등과 같은 새로운 인식론 철학이 발생,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17세기는 과학과 지식의 혁명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상황의 변화는 교육에도 반영되어 새로운 교육내용과 방법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실학주의란 17세기에 사회 문화적 변화의 영향으로 나타난 교육상의 새로운 사조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즉, 인문주의가 키케로주의로 그리고 종교개혁이 교조적인 형식주의로 변질된 상황을 딛고 새로운 문화적, 지적 자극의 영향으로 실용성, 실천성, 과학성을 그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17세기의 교육사조가 바로 실학주의인 것입니다. 이 실학주의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했는데, 인문적 실학주의, 사회적 실학주의, 감각적 실학주의 등입니다.

먼저, 인문적 실학주의는 가장 먼저 나타난 경향으로서, 고전 연구를 통해 현실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실학주의입니다. 고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인문주의와 동일하지만, 고전의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고 그 중에서도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즉, 인문적 실학주의는 언어주의,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내용주의, 현실주의를 추구하며,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과 현실을 고전에서 찾으려고 했던 사조입니다.

다음으로 사회적 실학주의는 고전연구보다 사회생활의 경험을 주요 교육내용으로 하여 신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학주의입니다. 신사란 인문적 교양만을 갖추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실생활과의 접촉을 통해 유능한 사회인, 세상일에 밝은 인간을 양성하려 하였습니다. 즉 지식교육보다 충분한 현실사회 경험을 쌓게 하였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감각적 실학주의는 인간의 감각적 직관을 기초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즉 인간의 감각적 능력을 중시하는 사조로서 과학적 실학주의라고도 부릅니다. 감각적 실학주의자들은 고전의 형식, 내용 또는 사회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물이나 표본을 감각적으로 직접 관찰하여 학습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감각적 실학주의는 자연과학적 지식과 실생활의 결합을 도모하였으며, 교수의 모든 원리를 자연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 당시의 학교교육은 자연과학의 지식을 존중하고 감각에 의해 사물의 관찰을 중시하는 직관적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오늘날 교육방법의 원리인 직관교육 또는 시청각교육의 모체를 이루었습니다.

이상에서 르네상스기, 종교개혁기, 실학주의기의 교육적 특징을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교육적 특징들은 18세기의 산업혁명에 직ㆍ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즉, 이 시기는 실질적인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준비기 또는 과도기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편에서는 여전히 중세의 잔재가 남아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근세적 특징들이 점점 더 강화되어 가던 시기였습니다.

강의록의 양을 줄이려고 하다보니 자세한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꼭 개인적으로 공부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럼 수업시간에 만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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